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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y returns

레고 현대 포니 -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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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y returns, memories

- epilogue

 

끝나지 않은 이야기.

(여러분의 추억을 들려주세요)

 

창작의 영감님은 늘 예고 없이 등장하시곤 합니다.

 

20159, 세 살배기 아들과 자동차 변신 로봇 애니메이션을 보던 때가 바로 그런 순간들 중 하나였습니다. 변신로봇들의 스승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했던 크림슨 색 포니 자동차는 단박에 제 마음을 앗아 갔습니다. 처음 선보인지 40년이 넘었건만 최신 자동차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직선 위주의 간결한 디자인은 레고블록으로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당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육아라는 미명하에 레고를 멀리하며 지내는 동안 작업책상 위에는 전쟁의 폐허마냥 온갖 잡동사니들만이 나뒹굴고 있었고, 거처를 옮기며 급하게 정리된 부품들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뒤엉켜있었습니다. 결국 실제 블록을 사용한 작품은 과감하게 포기 하고 가상 창작 프로그램인 LDD(Lego Digital Designer)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레고로 포니를 만드는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습니다.

 

 

 

 

구상 초기에는 주로 모델팀 스타일로 제작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흑백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1974년 이탈리아의 토리노 모터쇼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델들이 포니 옆에 서서 신차를 홍보하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굉장히 낯설었지만 의외로 정말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사진을 디오라마 형식으로 꾸며보고 싶었고, 포니에 얽힌 추억들을 모아 하나의 앨범처럼 묶어 보아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이 사진은 '포니 리턴즈, 메모리즈' 편을 구상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메모리즈'를 준비 하던 중, 부모님의 사진 앨범에서 보았던 오래된 사진이 하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포니 픽업트럭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담긴 사진이었습니다. 추억이라는 소재로 작품을 준비하다 보니,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시절 아버지의 삶에 대해 부모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제야 어머니가 명절이면 약방의 감초마냥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와 작품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그리고 앨범속의 오래된 사진이 합쳐지며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아버지의 삶이 마치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없는 살림에서도 교육과 재정적 지원을 받은 형들은 모두 주변의 더 큰 도시로 나가 살았던 반면 아버지는 군을 제대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읍내에 있는 전자제품 대리점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배달용 포니 픽업트럭을 접했으며 그 자동차로 처음 운전을 배웠습니다. 이 후 제가 태어나게 되었고 태어난 지 3일째 되던 날 이 트럭을 빌려 어머니와 저를 태우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 번째 에피소드 '1978 아빠와 나'는 만들어 졌습니다.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배달 일을 하는 남자가 병원에서 아내와 첫 아이를 태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그려보았습니다. 고향에서 부모를 모시고 사는 20대의 젊은 남자. 직장에서 차를 빌려 아내와 첫 아이를 태우고 돌아가는 길에 그 남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앞날에 대한 불안을 애써 떨치며 가장이라는 이름의 책임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제가 3년 전 아빠가 되어 아들을 태우고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저의 모습과 오버랩 되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왔습니다.

 

 

 

 

 

포니가 보내 준 시간 여행 덕분에 작업을 하는 동안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잠시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레고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였습니다. 올해 안에는 어떻게든 끝맺음을 내려다보니 쪽대본 드라마를 만드는 것처럼 거의 실시간으로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올리면서 이미 두 번째 에피소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 그리고 아내와 작은 마찰이 생겨났습니다. '아빠와 나'를 표현하는 작업이 도리어 가족들과 불협화음을 만드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언젠가 아들이 좀 더 크고 나면 더 이상 저를 찾지 않을 때가 올 것이고 그 때 과연 나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해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던 작업을 아주 잠시나마 멈추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포니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 끝에는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작업을 진행해가며 겪은 이런 경험은 마지막 에피소드인 '2016 오 나의 태양'으로 다시 녹아들어 갔습니다.

 

 

정적인 디오라마 형식에서 시작되었던 이 시리즈가 회를 거듭하며 인물의 동선과 스토리가 더해 가며 점차 진화해가는 모습을 보며 과연 어디 까지 나아갈 수 있을 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1985년을 끝으로 단종된 포니와 연결점을 찾아내는 데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다섯 번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메모리즈' 편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메모리즈'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니와 관련된 제 개인적인 추억은 여기까지이지만 다른 분들의 추억도 함께 엮어보면 어떨까라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회원 분들의 제보 사연과 사진을 바탕으로 '메모리즈'와 동일한 형식으로 에피소드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혹시 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적당한 게시판을 이용하여 짤막한 '사연'과 함께 포니와 같이 찍은 '사진'을 게시글로 올려 주시거나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메모리즈' 형식 에피소드로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작품에 과분한 응원과 격려 보내 주셨던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작가 의도를 정말 잘 이해해 주시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창작문화가 많이 성숙되었음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좋은 소식만 가득한 연말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 12. 04

GY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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